[논현로] ‘어쩌면 해피엔딩’이 못다한 얘기

입력 2025-06-2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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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토니상 받은 국내초연 창작뮤지컬
영광 뒤엔 기업문화재단 후원있어
규제풀어 사회공헌 더 활발해지길

한국 경제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기업은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도전하고 창조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일궜다. 그러나 눈부신 경제적 성과에 필적하지 못한 비(非)경제 분야의 낙후와 후진성은 그 자체로 사회적 문제였고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성장의 주역인 기업들도 불균형이 내포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를 성찰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커졌다.

1965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사면초가에 놓인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재산(180억 원)을 셋으로 나눠 그중 60억 원을 출연해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떠밀리듯 했던 출범이지만 삼성문화재단은 삼성가 오너들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지금은 재벌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으로 불린다. 지난달 겸제 정선전을 찾았던 필자도 삼성문화재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며 새삼 감탄했다. 삼성문화재단은 2024년 공시기준 자산 2조3281억 원, 수입 1537억 원에 달한다.

삼성보다 지명도는 낮지만 업적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 또 하나의 큰 문화재단이 있다. 개성상인 출신 윤장섭 성보화학 회장이 자신의 호를 따 설립한 호림미술관이 그것이다. 소중한 문화재가 돈이 없어 해외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한 그는 무역업, 증권업 등을 통해 번 돈을 아낌없이 쏟아 문화재 소장이라는 숭고한 사명에 헌신했다. 그리고 생전에 ‘성보문화재단’을 세워 일생에 걸쳐 모은 문화재 1만5000여 점의 소유권을 넘겼다. 개인 소유의 부동산과 유가증권 등 막대한 수입원 또한 이 재단에 기부했다. 기업이 없어지더라도 박물관만큼은 재정난을 겪지 않는 시스템을 굳건히 만든 것이다. 성보문화재단의 2024년 공시기준 자산은 3052억 원, 수입은 182억 원에 이르렀다.

오너가의 열정과 성과를 얘기하면서 ‘금호문화재단’을 빼놓을 수 없다. 클래식 마니아였던 금호그룹 박성용 회장은 금호문화재단을 통해 오늘날 우리나라가 자랑하고 있는 세계적 음악가를 양성해 냈다. 이 재단의 후원을 받은 김선욱, 권혁주,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 등은 모두 국제 콩쿠르 1등을 거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빛내고 있다. 박성용 회장은 자신이 직접 박수부대를 자처해 신예 음악가 발굴에 나섰고 해외 유명 지휘자들이 내한하면 영재들의 오디션을 주선하며 협연 약속을 받아 냈다. 금호그룹은 없어졌지만 금호문화재단은 자산 613억 원, 수입 27억 원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월 8일 우리는 K컬처 열풍의 한순간을 만끽했다. 제78회 토니상 수상식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이 작품상, 연출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한 것. 국내에서 초연된 창작 뮤지컬이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토니상을 받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아무리 뛰어난 창작진도 누군가의 도움없이 그 잠재력을 발휘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법. 이를 알아보고 작품이 무르익을 때까지 지원을 이어간 숨은 공신은 ‘우란문화재단’이었다.

이 재단은 SK(주)의 2대 주주인 최기원 이사장이 모친 박계희 워커힐 미술관장의 호를 따 사재를 출연해 2014년 설립됐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4년 작품 개발부터 약 5억 원을 지원받아 2020년 미국 트라이아웃(시범공연)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뉴욕 공연의 프로그램북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우란문화재단이 이런 방식으로 지원한 작품은 현재까지 45편에 달한다. 우란문화재단은 자산 42억 원, 수입 42억 원을 국세청 표준서식으로 공시했다.

이렇듯 국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 주고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의 균형있는 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기업재단이지만 이들이 처한 경영환경은 우리나라 기업 못지않게 척박하기만 하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올해 초 우리나라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가 외국과 비교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다며 규제완화를 주문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나라 공익법인은 의결권 행사가 5%로 제한돼 있는데 미국은 20%, 일본은 50%까지도 가능하며 독일은 아예 이런 규제 자체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대기업의 공익법인은 2019년 200개에서 2023년 210개로 늘었고 총자산(30조3000억 원)이나 기부금 수입(7705억 원)도 커져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이뤄낸 찬란한 성과가 우리 국민의 실종된 행복을 찾아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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