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파트 화재 참변, 왜 어린 자매만 남겨졌을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5-06-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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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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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어른들에게 싹싹하게 인사도 잘하던 착한 아이였는데….”

24일 새벽 부산진구 개금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단순한 비극을 넘어 사회적 숙제를 다시 꺼내 들었는데요. 매캐한 냄새가 가시지 않은 4층 외벽은 검게 그을려 있었고, 아이들이 머물던 침실의 흔적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아침, 이웃들은 우산을 든 채 사고 현장을 멍하니 지켜봤죠.


▲24일 오전 어린이 2명이 숨지고 다친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소방당국과 경찰 등 관계 기관이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이날 오전 4시 15분께 한 아파트 4층에서 부모가 일을 나간 사이 불이 나 10살 언니가 숨지고 7살 동생이 중태다.  (연합뉴스)
▲24일 오전 어린이 2명이 숨지고 다친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소방당국과 경찰 등 관계 기관이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이날 오전 4시 15분께 한 아파트 4층에서 부모가 일을 나간 사이 불이 나 10살 언니가 숨지고 7살 동생이 중태다. (연합뉴스)


그 시간, 왜 보호할 수 없었을까

사고는 오전 4시 15분께 발생했는데요. 불은 거실 내 컴퓨터 등 전자기기와 연결된 콘센트에서 전기적 요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침실에 있던 A(10) 양은 연기 흡입으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고, 동생 B(7) 양은 중태에 빠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는데요. 하지만 B 양도 25일 오전 병원 치료 중 끝내 숨졌습니다. 사고 당시 부모는 야간 근무로 모두 집을 비운 상태였죠. 생계를 위한 부재였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웃 주민들은 자매가 이웃들에게도 늘 밝게 인사하던 아이들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를 어른에게 인사할 만큼 예의 바른 아이들이었어요.” 한 50대 주민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는데요.

주민센터에 따르면 이 가정은 3월 생활고로 인해 복지 지원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소득 기준을 초과해 생계급여 등에는 해당하지 않았고, 자녀들만 교육급여 수급자로 선정됐는데요. 부산진구청은 현재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협력해 긴급 의료비 및 장례비 지원을 논의 중입니다.

경찰과 유족은 숨진 여아에 대해 부검 없이 장례 절차를 밟을 예정이며, 자매의 부모는 7살 여아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죠.


▲24일 새벽 부산진구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불이 나 10살과 7살 자매가 숨졌다.  (연합뉴스)
▲24일 새벽 부산진구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불이 나 10살과 7살 자매가 숨졌다. (연합뉴스)


그날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고는 단발적 사건이 아닌데요. 유사한 사고는 과거에도 반복됐습니다.

2023년 인천 서구에서는 12세 초등학생이 집에 혼자 있다가 화재로 중상을 입고 결국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죠. 아버지는 신장 투석 환자로 직장을 잃었고, 어머니는 아침 일찍 식당일을 나간 상태였는데요. 이 가정은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에 다섯 차례 위기 가구로 포착됐으나, 소득 기준을 넘는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매번 제외됐죠. 이 아이는 장기기증을 통해 네 명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2017년 안양에서는 15세 쌍둥이 형제가 맞벌이 부모의 부재중 라면을 끓이려다 가스 폭발로 큰 화재를 겪었는데요. 형제는 화상을 입고 집은 절반 가까이 불탔죠. 그들을 구조한 것은 우연히 현장을 지나던 경찰관이었습니다. 중학생 정도의 나이라 해도, 보호자 없이 남겨진 시간의 위험은 상상 이상이었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수치로 본 ‘아이 혼자 남겨진 시간’

이런 사고들은 단순한 안타까움을 넘어 구조의 부재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여성가족부의 ‘2022년 아동돌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적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가정 가운데 32.6%는 방과 후 시간대에 아동을 혼자 둔다고 응답했는데요. 맞벌이 가정은 이 비율이 36.4%, 한부모 가정은 49.4%로 더 높았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의 경우 약 38%가 ‘혼자 있는 시간 있음’이라고 답했으며 하루 평균 1.8시간의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죠.

특히 한부모 가정은 시간의 여유조차 갖기 어렵습니다. 통계청 ‘생활시간조사(2019)’ 분석에 따르면 일하는 한부모의 자녀 돌봄 시간은 하루 평균 29분에 불과했는데요. 맞벌이 가구가 52분인데 비하면 20분 이상 짧죠. 가정 관리에 투입되는 시간 역시 한부모는 하루 2시간 15분, 맞벌이는 1시간 41분으로 격차가 뚜렷했는데요. 생계와 돌봄을 동시에 책임져야 한다는 구조적 부담이 시간을 갉아먹는 셈입니다.

더 뚜렷한 변화는 미취학 자녀 가구에서 나타났는데요. 2004년까지만 해도 일하는 한부모는 하루 126.2분을 자녀 돌봄에 썼지만, 2019년엔 60.0분으로 절반 넘게 줄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맞벌이 가정은 68.9분에서 83.1분으로 돌봄 시간이 오히려 늘었죠. 이는 돌봄 공백이 한부모 가정에 특히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도는 있지만, 왜 닿지 못했나

정부의 돌봄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부와 각지자체는 ‘다함께돌봄센터’, ‘아이돌봄서비스’, ‘지역아동센터’, ‘다함께유아숲체험’, ‘시간제 돌봄’ 등 다양한 지원 제도를 운용 중인데요. 다만 서비스의 지역 편차가 크고, 대상 조건이 제한적이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매번 제기됐습니다.

가장 심각한 건 인력 문제인데요. 제도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정원이 적고 운영시간이 부모의 근무 시간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죠. 또 시간당 비용이 비싸고, 긴급 상황에 즉시 대응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도 큽니다. 돌봄을 맡는 종사자 다수가 비정규직·단시간 근로자인 점도 장기적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됐죠.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하는 셈인데요. ‘접근성의 장벽’이 여전히 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누구의 책임에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

돌봄은 더는 개별 가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야간 노동과 맞벌이가 보편화한 사회에서, 부모의 근무 시간 동안 아동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공공 인프라로서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죠. 특히 저소득·한부모 가정에 집중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번 사고는 단지 한 가족의 비극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반복해서 놓치고 있는 구조적 신호일 수 있죠. “왜 혼자 있었을까”를 탓하듯 묻기보다 “왜 곁에 있어 줄 수 없었을까”를 조용히 되묻는 시선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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