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뮤지컬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폭발적인 인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인기 최고의 걸그룹 헌트릭스가 악령이자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를 물리치고 인간 세계를 지키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다양한 콘셉트로 말아주는(?) 무대, 벅차오르는 OST, 다양한 캐릭터, 생생한 성우들의 연기까지 맞아떨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입소문을 탔는데요. 20일 공개된 이후 6일째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1위를 지키면서 신드롬을 쓰고 있습니다.
영화를 수차례 돌려 보고 음원까지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섭렵하며 '입덕'한 이들은 이제 굿즈를 내달라고 아우성인데요. 팬들의 높은 수요를 만족시키기엔 넷플릭스도 역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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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계 캐나다 감독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가 공동 연출했는데요. 아트 디렉터 등 한국계 제작진이 대거 참여하면서 한국 신화부터 K팝 산업, 소소한 생활습관까지 잘 고증해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헌트릭스가 악령을 물리칠 때 사용하는 무기인데요. 조선시대 도감의 사인검부터 언월도, 곡도, 신칼, 은장도 등을 원형으로 제작됐죠. 헌트릭스 멤버 '루미', '미라', '조이'는 현대적인 감각과 디테일이 더해진 노리개도 착용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들은 일월오봉도와 단청 문양을 연상케 하는 무대에서 짜릿한 공연을 펼치고요. 헌트릭스 팬들은 전통 매듭 디자인을 연상케 하는 응원봉을 들고 이들을 응원합니다.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인 헌트릭스, 매력적인 빌런 '진우'를 포함한 사자 보이즈 멤버들만큼이나 큰 인기를 끄는 더피와 서씨 듀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화 작호도(호작도)를 떠올리게 하죠.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공개된 직후 팬들 사이에서는 "당장 굿즈를 내놓으라"는 요청이 쏟아졌습니다. 물론 넷플릭스가 공식 머천다이즈(MD)를 출시하긴 했지만 단순히 헌트릭스나 더피 모습을 프린트한 반소매 티셔츠, 후디, 볼캡, 버킷햇 정도에 그쳐 "내가 전사지에 뽑아서 입든지 해야겠다", "우리가 원한 건 더피 인형", "티셔츠 말고 키링이나 내놔라" 등 원성이 이어졌습니다.
배우 안효섭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 팬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았습니다. '진우' 목소리 역으로 열연한 안효섭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더피 인형을 올려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는 넷플릭스가 공식 출시한 MD가 아닌, 관계자들에게만 주어진 기념품이었습니다. 안타깝지만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한다는 거죠.
팬들의 협박(?)이 이어지자 넷플릭스도 다급히 공식 더피 인형을 출시, 프리 오더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크기 약 25㎝의 더피 인형은 9월 중순에나 배송된다고 하는데요. 7만4000원의 이 인형에는 배송비 4만3000원이 추가됩니다. 적지 않은 팬들은 분주히 계산기를 두드렸는데요. 가격 대비 디자인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도 나왔습니다.
이에 팬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쳐들어갔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진작 작호도 관련 굿즈를 팔고 있었기 때문이죠.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념품 브랜드 '뮷즈'의 지난해 공모 선정작이기도 했던 '까치 호랑이 배지'는 호랑이 머리 위에 까치가 앉아 있는 깜찍한 모습인데요. 더피와 서씨 조합을 떠올리게 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이 원조 아니냐", "역시 원조라 퀄리티가 좋다", "작년에 사서 달고 다니던 건데 더 자신 있어졌다" 등 웃음 섞인 반응이 이어집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화제가 된 이 상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품절됐는데요. 중고 거래 플랫폼 등에서는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높은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린다. 현재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아 부득이하게 일시 품절 안내를 드리게 됐다"며 "귀여운 '까치 호랑이 배지'를 하루라도 더 빨리 받아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했죠. 다음 달 11일, 18일 재입고될 예정이라네요. 구매를 위해선 빠른 손이 생명입니다.

사실 극장가에서는 굿즈를 향한 팬들의 집착(?)이 낯설지 않습니다. '굿즈 맛집'으로 이름을 떨치며 영화사 자체의 팬덤을 형성한 곳도 있을 정도죠.
'문라이트', '레이디 버드', '유전', '미드소마', '라이트 하우스',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패스트 라이브즈', '존 오브 인터레스트', '서브스턴스' 등 개성이 강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영화를 잇달아 배급하거나 제작한 미국 영화사 A24가 대표적입니다. 줄줄이 나열한 영화에서부터 알 수 있듯 시네필들 사이에서는 '믿고 보는 영화사'로 통하죠.
A24의 이름값은 디지털 마케팅에서도 빛납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계정을 적극적으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하며 독창적인 굿즈를 선보이는데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기묘한 비주얼로 경악을 자아낸 소시지 장갑부터 애완 돌, 눈알 스티커, '프리실라'의 실버 하트 로켓 목걸이, '언컷 잼스'의 농구공 등은 팬들 사이 인기를 끌며 빠르게 품절됐습니다. 특히 '언컷 젬스'의 한정판 농구공은 발매가가 75달러였지만, 웃돈이 수백 달러 붙은 채 거래될 정도로 인기였죠.
하도 인기가 좋다 보니 A24는 유료 멤버십도 공식 운영합니다. 미국 기준 한 달에 9.99달러, 1년엔 99달러를 내면 멤버가 되는데요. 주요 혜택으로는 A24 신작 영화 극장 티켓과 웰컴 패키지 제공, 무료 상영회 초대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매력적인 건, 한정판 굿즈 및 신상품을 우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공식 굿즈도 10% 할인받을 수 있죠.
국내에서도 굿즈 마케팅은 진화 중입니다. 일반적인 기념품이던 영화 티켓은 관객이 직접 이미지를 골라 제작할 수 있는 포토 티켓으로 발전하더니 소장 욕구를 드높이는 한정판 스페셜 티켓으로도 모습을 바꿨습니다.
여기서 나아가 자체 제작 굿즈도 등장하는 추세입니다. 찬란은 해외 독립 예술 영화를 국내에 소개하며 영화 팬들의 무한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수입 배급사인데요. 배우 소지섭이 투자자로서 힘을 보태온 사실로도 잘 알려져 있죠. 배우 데미 무어에게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미국배우조합(SAG)상 모두에서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 '서브스턴스'도 찬란이 들여왔습니다.
찬란은 데미 무어의 골든 글로브 수상을 기념하고자 영화 상영 후 관객들에게 수건을 돌리는 행사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는데요. 골든 글로브의 트로피 색인 노란색에 '데미 무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 2025.01.05'를 새긴 수건이었습니다. 찬란은 SNS에 상영회 소식을 전하며 "축하할 일은 수건에 새기는 게 아무래도… 인지상정이니까"라고 적어 웃음을 자아냈죠.

굿즈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닙니다. 팬들에게 굿즈란 콘텐츠와의 감정적 연결고리를 물리적으로 실현하는 수단인데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이 이어지길 원하고, 굿즈는 그 마음을 붙잡아 주는 실체가 되죠.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불러온 굿즈 요청 사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팬들은 "콘텐츠가 너무 좋아서 그냥 넘길 수 없다"며 인형, 키링, 포스터, 포토카드 등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는데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감동을 손끝으로도 느끼고 싶은 마음. 이 감각적 소비 욕망은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강해지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굿즈는 콘텐츠 소비를 반복게 하는 효과도 큽니다. 마음에 든 굿즈 하나를 구매한 뒤 다시 작품을 돌려보게 되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팬덤 커뮤니티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죠. SNS 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시기, 팬들의 욕구와 영화 산업의 수익 다각화 전략이 맞물리면서 극장가의 굿즈도 참신함으로 무장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