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트와이스, 더블랙레이블 수장이자 프로듀서 테디, 댄서 리정, 배우 이병헌까지…
화려한 스타들이 뭉쳤습니다. 다름 아닌 넷플릭스 새 애니메이션에서요.
이들이 활약한 분야는 다채롭습니다. 한국어, 영어 더빙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OST를 부르거나 작곡·프로듀싱에 참여하고, 캐릭터들이 추는 댄스까지 구상하는 등 작품 곳곳에서 맹활약했는데요.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죠. 작품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글로벌 정상 자리를 빛내는가 하면 OST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1위를 기록하고, 팬덤까지 형성돼 팬아트가 전 세계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뮤지컬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인기 요인부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탈탈 털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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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내용만으론 '유치하다'는 혹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이중생활, 악령 퇴치, 단순한 선악 구도, 마법 소녀 성장 스토리 등 각종 장르적 클리셰가 총집합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작품은 입소문을 제대로 탔는데요. 우선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등을 제작한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을 맡은 만큼 화려한 액션 신이 시청자들의 혼을 쏙 빼놨습니다. 한국계 캐나다 감독인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가 공동 연출한 데다가 한국계 제작진이 대거 참여하면서 고증에도 충실하다는 호평이 이어졌죠. 여기에 K팝 문화에서 기반한 신선한 매력으로 재미까지 잡았습니다.
K-귀신인 도깨비와 저승사자를 연상케 하는 악령들, 민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호랑이·까치 캐릭터, 캐릭터들이 착용한 한복과 갓 등 전통적인 요소를 보는 재미도 있고요. 남산 서울타워에 북촌마을, 낙산공원까지 서울 시민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실제 핫플레이스까지 세밀하게 담겨 '이스터 에그' 역할을 합니다.
실제 사물이나 장소를 구현한 것뿐만 아닙니다. 헌트릭스 멤버들은 고된 하루를 국밥으로 털어버립니다. 수저 아래에 티슈 한 장을 깔아두는 K-테이블 매너도 잊을 수 없죠. 의자 위에서 다리 하나를 세우는 편안한 자세도 포착돼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K팝 문화도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사자 보이즈는 신인 보이그룹 성공 공식인 '청량' 콘셉트로 데뷔하고, 컴백 무대에선 확 달라진 '저승 섹시'(?) 콘셉트를 선보여 팬들의 열띤 함성을 자아냅니다. 가요계 선배인 헌트릭스 멤버들에겐 90도 폴더 인사를 하죠. 팬들은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 멤버들 조합을 형성해 애칭까지 붙이고요. 귓속말하거나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걷어차는 모습이 팬들에게 포착돼 영업 포인트(?)로도 통합니다.
이 같은 포인트는 입소문 비결로 통했습니다. X(옛 트위터)에는 팬아트가 줄줄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시청자들이 머리를 맞대면서 캐릭터의 정체를 추리하거나 공식 설정 이상의 서사를 부여하는 등 일종의 팬덤 문화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죠.
24일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20일 공개된 작품은 21~23일 사흘간 글로벌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시청 스코어는 781점으로, 전날(771점)보다 상승한 데다가 글로벌 2위를 기록한 영화 '스트로우'(565점)와도 격차를 더 벌렸는데요. 31개국에서 정상에 올랐고, 93개국 '톱 10' 리스트에 진입하며 인기를 입증했죠.
미국 콘텐츠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지수 96%를 기록하고 있고요. 외신들 역시 호평을 내놨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매력적이고 재미있으면서도 전통을 잇는 감각적인 세계관"이라고 했고, 미디어 웹진 IGN은 "진지함과 유쾌함의 균형을 완벽히 잡았다"고 평가했습니다.
노래까지 흥했으니 '대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운드트랙은 전날 기준 미국 아이튠즈 앨범 차트 100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요. 송 차트에서도 일부 곡이 톱 100에 진입하며 존재감을 발산했습니다.

팬들은 비하인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매기 강 감독은 헌트릭스 멤버들을 구상할 때 걸그룹 블랙핑크, 트와이스, 있지를 살펴봤다고 밝혔는데요. 미라의 경우 모델 안소연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죠. 사자 보이즈는 빅뱅, 방탄소년단(BTS), 몬스타엑스, 에이티즈, 스트레이키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보이그룹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전언입니다. 특히 진우는 한국 배우들의 이미지를 본땄다는데요. 매기 강 감독은 차은우와 남주혁을 콕 짚었습니다.
헌트릭스, 사자 보이즈의 노래가 좋았던 이유도 따로 있었습니다. 먼저 더블랙레이블 사단이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더블랙레이블 수장인 테디는 물론 쿠시, 24, 빈스, 대니 정 등이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 참여했습니다. BTS '작은 것들을 위한 시', 트와이스 '셋 미 프리(SET ME FREE)'로 많은 사랑을 받은 린드그렌, BTS의 '버터(Butter)' 공동 작곡가 제나 앤드류스 등까지 K팝 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프로듀서 라인업을 갖췄는데요.
더빙에는 아덴 조, 메이 홍, 배우 안효섭, 유지영, 김윤진, 켄 정, 이병헌, 대니얼 김 등이 참여했습니다. 재치 있는 패러디 영상으로 잘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성우 조성원도 사자 보이즈 멤버 애비 역을 맡아 맹활약했죠.
캐릭터의 가창까지 한국인 혹은 한국계 아티스트들이 맡았는데요. 더블랙레이블 대니 정,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앤드류 최, 유키스 멤버 케빈 등이 사자 보이즈 멤버로서 열창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또 이들의 안무에는 댄서 리정과 '스트릿 우먼 파이터2'에서 탄생한 크루 잼 리퍼블릭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현되지 못한 아이디어도 팬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의 합동 팬사인회 장면은 사실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설정이었다고 합니다. 진우와 루미가 양궁 종목에 임하면서 대화하는 장면이 초기 기획이었는데요. 포브스에 따르면 모든 임원들이 '아육대' 자체에 대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왜 갑자기 아이돌 그룹끼리 허들을 뛰어넘고 양궁을 하는 등 '올림픽'을 치르냐는 거죠. 결국, 이 장면은 임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팬사인회 장면으로 변모했는데요. 이 비하인드가 전해지자 K팝 팬들은 "기획사도 다른 아이돌 그룹이 합동 팬사인회라니", "'아육대'가 더 자연스러웠을 텐데, 아쉽다", "실제로 저런 합동 팬사인회를 진행한다면 트럭 시위가 시작될 것" 등 '과몰입'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웃음을 자아냅니다.

넷플릭스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했습니다. 영어, 한국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스페인어 등 글로벌 더빙과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죠.
190여 개국 동시 공개는 넷플릭스의 표준적인 배급 방식입니다. 다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핵심인데요. 넷플릭스가 '전 세계 시청자가 이 작품에 공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는 거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이 글로벌 플랫폼에서 스토리와 세계관을 갖춘 하나의 주류 지식재산권(IP)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요. K팝이 특정 지역의 문화가 아닌 누구나 동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글로벌 콘텐츠로 받아들여지는 셈이죠.
글로벌 게임 미디어 IGN은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2023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엄청난 성공 이후 초자연적인 악을 퇴치하는 K팝 아이돌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건 다소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음악 장르인 K팝은 지난 10년간 가장 사랑받은,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문화적 힘이다. 이 두 훌륭한 콘텐츠가 함께 어우러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라고 밝혔는데요.
미국 시카고 트리뷴, 롤링 스톤 칼럼니스트 김재하 평론가는 "수십 년간 인터뷰해 온 한국인과 한인 디아스포라, 그리고 이민자로서의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우리 대부분은 한국 대중문화가 우리 외의 누군가에게 '멋지다'고 여겨질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엔터테인먼트는 어디에나 있다"며 작품을 언급했죠.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향한 뜨거운 반응에 대해 매기 강 감독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문화를 다루는 최초의 애니메이션 영화이며, 성우 및 보컬 모두 한국인 탤런트로 캐스팅한 점이 뜻깊다"며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때부터 꿈꾸던 목표를 실현하고, 이 경험을 캐스트와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굉장히 보람차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