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딜’ 안 보이는 한국…기업별 구조조정에 그쳐
“국내 기업들 벤치마킹 해야”

일본 5위 석유화학 기업 미쓰이화학이 생산시설 통폐합과 저수익 사업 정리를 골자로 한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역내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로 인한 수익성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다. 뚜렷한 ‘빅 딜’ 없이 개별적 대응에 그치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도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쓰이화학은 최근 기초 및 그린소재(B&GM) 사업부를 2027년경 분사한 뒤 외부 기업과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범용 부문을 떼어내고,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제품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생산설비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미쓰이화학은 2023년 이와쿠니-오타케 사업장의 테레프탈산(PTA) 공장을 멈춘 데 이어 지난해 페트(PET) 공장까지 닫았다. 올해 10월 말 이치하라 페놀 공장을 폐쇄할 예정이다. 치바 지역의 폴리프로필렌(PP)·폴리에틸렌(PE) 라인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으며, 여러 업체와의 생산 최적화 협의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중심의 대규모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과 내수 침체로 수익성이 한계에 달했다. 미쓰이화학은 과감하게 범용 부문을 떼어내고 정보통신기술(ICT)·의료·반도체소재 등 스페셜티 사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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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2년 넘는 수익성 부진에도 뚜렷한 ‘빅 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별 기업들이 고부가 사업 확대, 저수익 사업 매각 등에 나서고 있지만,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폐합 등의 핵심 조치는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다.
업계 내부에선 “NCC 수익성이 너무 낮아 매각조차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LG화학은 여수 NCC 2공장 매각을 추진해 왔지만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다른 NCC 업체들도 통폐합이나 매각 대신 가동률을 조정하는 데 그친다.
이 같은 속도 차이는 제도적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한때 세계 2위 에틸렌 생산국이었던 일본은 아시아 신흥국의 대규모 증설로 경쟁력을 잃자, 정부가 주도적으로 설비 통폐합과 인수합병(M&A)을 유도하며 구조조정에 나섰다. 미쓰이화학 역시 1997년 미쓰이석유화학과 도요사카이화학이 합병해 출범한 회사다.
한국은 지난해 말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방안’을 논의에 들어갔지만,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지지부진하다.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규제도 대형 M&A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회사마다 생산 제품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엇갈려 자발적 구조조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 시기가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실행력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쓰이화학은 범용 사업 분사 및 부분 매각을 단행해 보다 스페셜티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며 “매각 타당성을 검토 전 선제적인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범용 사업을 구조조정하는 전략은 향후 한국업체에게도 벤치마킹이 필요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