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지원·기업결합 심사 완화 등도 요구
산업 재편 급한 석유화학업계…정부 제도 뒷받침 시급
일본·독일 등 사업 재편 성공 사례 참고해야

본지 설문조사에 응한 기업 중 절반이 넘는 곳들(51.1%)은 차기 정부가 산업 재편 과정에서 신산업 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복합 위기 속 생존을 위해 인수합병(M&A) 등 신사업 추진이 불가피한 만큼, 기업결합심사 완화 등 정부의 제도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구조조정 지원 강화’(20%)와 ‘기업결합 심사 완화’(14.3%)도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산업 환경 변화가 연착륙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승인 절차를 완화하는 등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을 중심으로 산업 환경이 상당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려면 정부가 기존 규제를 계속 유지하는 대신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고 기업을 지원해주는 움직임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발(發) 공급과잉 여파 등으로 장기 불황에 직면한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산업 구조 재편이 가장 시급한 곳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레이팅스는 최근 ‘더 깊은 하락 사이클에 직면한 한국 석유 화학 기업들’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올해도 힘든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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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비효율 자산이나 비핵심 자산을 팔면서 불황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매각을 통해 자금을 마련함으로써 고부가 사업으로 전환할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LG화학은 담수사업을 담당하는 워터솔루션 부문 매각을 위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 협상을 진행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2월에는 파키스탄 법인(LCPL) 지분을 979억 원에 매각했고, 3월에는 2020년부터 보유 중이던 일본 소재기업 레조낙 지분 전량(4.9%)을 2750억 원에 매각했다.
그러나 석유화학업계의 사업 재편을 활성화할 제도 이행은 지연되는 실정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말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상반기 기업의 사업 재편 활성화를 위한 3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자금을 투입하고 공정거래법 활용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합작법인(JV) 설립이나 신사업 M&A 등을 추진할 경우, 기업결합심사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전컨설팅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다만 탄핵과 대선 정국 속에 동력을 잃은 상태다. 이대로면 하반기까지 제도 이행이 밀릴 가능성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해외에 정부 주도 속에 사업 재편에 성공한 석유화학기업 선례가 많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일본은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하면서 석유화학기업들의 사업 재편을 도왔다. 기업 간 통폐합을 주도해 나프타분해시설(NCC)를 지역당 1개 사만 남긴 게 대표적이다. 2019년 11월에는 미쓰비시화학과 JXTG 닛폰 오일 앤 에너지가 석유화학 JV를 설립하며 사업 효율성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세계 1위 석유화학 업체인 독일 바스프는 M&A를 기반으로 전통적인 석유화학 제품 비중은 줄이고 양극재 시장 등 신사업에 진출하며 불황을 돌파했다. 이에 범용제품 비중을 2005년 42%에서 2022년 17%까지 낮출 정도로 사업 다각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