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유연화 가장 시급" 답해
'인허가 규제'에 신산어 도전 막혀
정권마다 바뀌는 '세제' 역시 부담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기업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정책 키워드는 ‘규제 개혁’, ‘세제 개편’, ‘노동시장 유연화’다. 기업들은 이를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으로 규정하며 차기 정부의 전면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13일 본지가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에 속한 주요 대기업 5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들은 ‘불합리한 규제 개혁’(56%), ‘세제 개편’(34%), ‘노동시장 유연화’(30%)를 차기 정부의 시급한 정책 과제로 꼽았다. 정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요소들을 걷어내야 한다는 요구로 풀이된다.
규제 개혁과 관련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복수 응답)에 대해 기업들은 △인허가 및 행정절차 간소화(50%) △기존 규제의 전면 재검토(42%) △네거티브 규제 체계로의 전환(32%) △디지털·플랫폼 신산업에 대한 규제 정비(28%)를 주요 항목으로 꼽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여전히 ‘허가받아야 할 항목’을 일일이 나열하는 포지티브 규제 체계에 묶여 있어,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규제(복수 응답)는 다양했다. 가장 많은 기업이 △노동·고용 규제(52%)를 지목했다. 이어 △인허가 규제(50%) △세제 관련 규제(40%)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24%) △금융·자금조달 규제(18%) 순이었다. 노동·고용 규제와 맞물려 노동 구조에 대한 개편 필요성도 크게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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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관련해 가장 필요한 개선 방향(복수선택)에 대해 64%는 ‘근로시간 유연화’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최근 반도체 연구개발(R&D)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주 52시간 제도의 유연 적용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된 것과 맞닿아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처럼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선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해주는 식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연구개발 분야는 몰입이 필요한 직군인데도 현행 제도는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했다.
기업들은 △고용형태 다양화(44%) △성과 중심 임금체계 확대(38%) △노사관계 합리화(30%)를 노동시장 개선 과제로 꼽았다. 또 △청년 및 고령층 일자리 지원(14%) △외국인 고급 인재 유치 및 비자 제도 개선(12%)도 선택됐다. 이는 급변하는 산업 구조와 인력 수요 변화에 기존 제도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인허가 규제 역시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 고충으로 지목된다. 2019년 초 건설 계획이 발표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올해 2월에야 첫 삽을 뜬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자치단체 반발로 인허가가 지체됐고, 토지 보상 과정에서도 진통이 컸다. 막판엔 전력 공급 문제까지 불거지며 착공이 3년가량 늦어졌다.
세제와 관련해선 정부의 잦은 제도 변경과 예측 어려움이 기업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금 정책이 널뛰듯 바뀌니, 수익성과 관계없이 눈치를 보며 투자 시점을 재조정해야 한다”며 “세제는 단순한 부담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0년의 정책평가! 향후 10년의 혁신환경’을 주제로 개최한 온라인 좌담회에서도 기업들의 어려운 환경은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전체 기업부담지수는 105.5로, 2015년(109.5) 대비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기준선(100)을 상회하고 있다. 기업들이 각종 규제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방증이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은 “52시간 근로시간 규제를 중심으로 고용유연성이 지극히 낮은 우리 노동시장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국회를 중심으로 늘어난 규제법령에 대한 압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그러면서 “규제네거티브시스템과 규제영향평가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경총 규제개혁팀장은 “글로벌 무역규제 강화 등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이 혁신과 도전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