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 인사들 간 불편한 동거는 빨리 끝나야 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후 지난달 30일 출범한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변필건 당시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 단장을 맡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변 전 실장은 윤 정부 시절인 2023년 9월 수원고검 차장 검사(검사장)에 승진 발령된 뒤 이듬해 법무부 기조실장으로 옮겨 법무기획을 총괄한 인물이다. ‘윤석열 라인’ 검사라는 점만 해도 부적절하지만, 법무부 기조실은 수사권까지 조정하는 요직이라 검찰권을 확대해온 윤 정부 출신 법무부 기조실장에게 법무·검찰 행정을 계속 담당케 하기는 어렵다.
법무부는 1일 검찰 고위직 인사를 단행하고 기조실장에 최지석 서울고검 감찰부장을 발탁했다. 같은 날 법무부는 검찰국장 또한 성상헌 대전지검장으로 교체했다. 검찰국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주무르는 곳이어서 이재명 정부 법무부 장관이 검찰 개혁 의지를 펼치기 위해서는 교체 대상 1순위로 꼽힌 자리다.
정 장관 후보자가 지명되는 날 합을 맞출 대통령실 민정수석 비서관에는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 검사가 임명됐다. 법조계는 봉욱 신임 민정수석에 대해 “합리적인 성격을 지녔다”라고 평가한다. 봉 수석은 임명되자 곧바로 심 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에 용퇴 메시지를 보냈고, 이를 당사자들이 저항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심 전 총장 역시 법조계에서는 차분한 성품으로 평한다.
우여곡절 끝에 정 후보자를 보필해 검찰 개혁을 이끌 법무·검찰 밑그림이 대략 마무리된 셈이다.
법무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차려진 서울 종로구 적선 현대빌딩에 들어서는 정 후보자를 보면서 6년 전 8월이 떠올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8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했다. 내정 직후 조 전 장관은 적선 현대빌딩에 인사청문 준비단을 꾸렸다. 마침 정 후보자와 같은 사무실이다.
바람에 흘러내린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당당한 걸음으로 씩씩하게 출근하던 조 전 장관은 ‘서해맹산(西海盟山)’이란 사자성어를 인용하며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서해맹산이란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판옥선 12척을 눈앞에 두고 진중에서 읊은 구국단심을 올곧이 드러낸 진중음 한 구절로 알려져 있다. ‘서해어용동(誓海漁龍動) 맹산초목지(盟山草木知)’에서 연유한다. ‘바다와 서약을 하니 물고기와 용이 요동을 치고 산에 맹서를 하니 초목이 알아주더라’는 뜻. 최우선 국정 과제로 검찰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결의를 담은 표현으로 해석됐다.
이후 강골 검사이자 철저한 검찰주의자로 꼽히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촉발한 ‘조국 일가 사태’가 불러온 일들은 모두가 잘 안다.
그 때처럼 검사들이 검란(檢亂)을 일으키며 벌떼 같이 달려들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같은 성향을 가진 검찰 내 강력한 구심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도 불안한 시선은 거두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한동훈 검사에 막혀 실패로 돌아갔던 검찰 개혁 2라운드를 맞아 “갑자기 검찰 개혁에 찬동하는 언사를 쏟아내며 접근하는 검사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옥중편지 내용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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