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의들이 근무하는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평가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사직 전공의들에게서 나왔다. 현행 평가제도는 서류와 수치에만 치중해 전공의 근무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23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정책포럼을 열고 미래 의학 교육과 전공의 교육 방향을 모색했다. 이번 포럼은 지난 5월에 개최된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2025) 참가 결과를 공유하고 국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했다.
포럼에서는 형식적 절차에 그치는 전공의 수련환경평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부터 수련환경평가위원회(수평위)를 두고 인턴·레지던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련병원을 평가하고 있다. 수평위는 의료계 및 정부가 추천한 전문가 위원 15인 이내로 구성된다.
수평위는 전공의에게 양질의 교육을 보장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운영된다. 하지만 그간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수평위 활동이 겉핥기식 서류 평가에 그치며, 결과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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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에 참석한 김민수 의협 정책이사는 “우리나라의 수련환경평가는 실사가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한계인 것 같다”라며 “정성적인 평가를 늘리는 글로벌 추세와 달리 한국의 수련환경평가는 많이 빈약하지 않나 싶다”라고 우려했다. 김 이사는 사직 전공의로 의협 집행부에 이름을 올렸다.
김민수 이사는 “실제 수련환경평가 항목들이 어떻게 채점되고 평가되는지, 전공의 수련환경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며 “지도 전문의나 수련기관 교수들이 어떻게 지도하는지에 대해 정성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규정과 배치되는 점이 없는지 형식적이고 수치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지적했다.
전공의 수련환경평가가 이름과는 달리 전공의를 제대로 만나보지도 않은 채 이뤄진다는 모순도 언급됐다.
김민수 이사는 “코로나19 이후 실사 평가가 많이 줄었는데, 엔데믹 이후에도 현장 실사 비율은 20~3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라며 “이마저도 실제 전공의들을 인터뷰하거나 대면해 평가하는 활동에 집중되지 않고, 이미 작성된 서류나 통계를 재검토하는 데 그친다”라고 말했다.
평가의 결과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민수 이사는 “평가 결과가 개별 수련기관에 리포트로 나가는데, 의료기관은 그것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게시되는 내용은 ‘해당 의료기관이 어떤 과목에 대한 인증 받았다’라는 정도로 굉장히 빈약하다”라며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자체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이유도 이런 평가 결과들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김유영 의협 기획이사는 수평위의 평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토로했다. 김유영 이사 역시 사직 전공의 출신으로 의협에 합류했다.
그는 “전공의가 동문회의 주소록을 만들거나, 교수님의 심부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며 “이식 수술이나 심장 수술처럼 고난도 술기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수련을 마치는 때도 있고, 교수님께 배워야 할 것을 윗년차 선배에게 말로만 듣고 지나가는 일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평위가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날을 세웠다.
수련환경평가가 병원에 유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전공의 피드백이 반영되지 않고, 의료기관에 시정을 강제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김유영 이사는 “현재 수평위의 평가는 교육 내용의 질, 피드백 여부, 전공의 자율성 등 질적 요소가 평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물론 평가가 병원의 자율보고 방식으로 진행돼 병원이 사실과 다른 보고를 해도 검증할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형식적인 설문조사가 진행되며, 이조차 신윈 노출 우려로 제대로 된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문제가 드러나도 실질적 페널티 없이 넘어가거나, 단기적 조치에 그치는 등 평가 이후 조치도 불분명하다”라며 “수련병원 의국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전공의를 배출하면 결국 환자에게 해로운 결과가 발생한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