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급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AI 인프라 확장에 따라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탄소중립 목표까지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이중 과제’가 국가 에너지 정책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전력 수급 상황과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에너지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심형진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1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적극 대응함과 동시에, 안정적인 공급 방안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단지 AI 데이터센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체 전력 수요와 전력망 유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종합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론적으로 전력 수요는 신재생에너지, 가스, 원자력 등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핵심은 ‘최적화’에 있다”며 “어떤 발전원 조합이 가격 경쟁력, 공급 안정성, 탄소 감축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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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발전원이 가진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심 교수는 “화력·가스 발전은 탄소 배출이 있지만 빠르고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며, 태양광·풍력은 무탄소지만 입지와 가동 시간의 제약이 크다”고 설명했다. 원자력은 안전성 논란이 존재하지만 대규모 공급이 가능한 자원이다.
그는 이어 “전력 수요 증가와 탄소중립이라는 과제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도전”이라며 “정답을 고정하기보다는 2년마다 수급 계획을 점검·업데이트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AI 주도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단기 대응책으로는 천연가스 발전 확대가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독일 등 주요국은 이미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해 가스 발전소를 확충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소형모듈원전(SMR)은 상용화까지 최소 10년 이상, 대형 원전은 25년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의 수요 대응 수단은 아니다”라며 “천연가스 발전소는 2~3년 내 건설이 가능해 단기적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기가 필요하지만, 태양광은 하루 3~4시간만 발전이 가능하고, 풍력은 입지 편중으로 수도권 공급에 한계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단기간 내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천연가스”라고 덧붙였다.
또한 “천연가스는 완전한 무탄소 에너지원은 아니지만, 화석연료 중 가장 친환경적인 데다 향후 수소 연료 전환도 가능해 중장기 친환경 체계로의 전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에너지 소비 급증은 일시적이며 장기적으로는 RE100 등 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딥시크(DeepSeek)는 오픈AI 모델 대비 에너지 소비량이 10분의 1 수준”이라며 “AI 모델의 효율이 향상되고, 에너지 최적화 기술이 도입되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최하위권”이라며 “‘재생에너지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까’에 집중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